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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권의 오페라 따라잡기] 그 이름은 사랑입니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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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7-19 20:53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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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권과 함께 오페라 따라잡기①

 

그 이름은 사랑입니다.

  

 

김 석권 동아의대 교수

그랜드 오페라단 후원회장


니콜라 마르티누치, 나는 17년 전 로마에서 아름다운 그의 목소리를 통해 그와 만났다. 나는 1992년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국제 성형외과 학회 학술대회를 마친 후 함께 참석한 성형외과 의사들과 더불어 로마 관광을 하였다. 전날 밤에 로마의 예술 공연 스케줄을 검토 하였으나 7월이어서 대부분의 음악회는 시즌을 마감하였고 다만 카라칼라 특설무대에서 음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내용을 보니 로마의 델라 오페라단에서 투란도트 공연을 하고 있었다. 마침 우리 일행이 여행하는 동안에는 투란도트 공연이 열리고 있어서 여행가이드에게 표를 구매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날 여행을 끝내고 세 사람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카라칼라 목욕탕으로 갔다. 카라칼라 목욕탕은 로마시대의 유물로서 로마시민 1500명이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엄청나게 큰 목욕탕이다. 폐허가 된 이 유적의 뒷면에 야외 음악당을 설치해 해마다 여름철에 음악 축제를 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화재 훼손문제로 곧 중단되어 지금은 축제가 사라져 버렸다.

로마 카라칼라 특설무대에서의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자 당일 출연하는 오페라 가수들이 공 투란도트 공연의 포스터 연의상을 갖추고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너무나 즐겁기도 하고 의상이 멋져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오페라에 심취한 것은 아니었다. 투란도트의 내용도 잘 몰라서 표지에 아름다운 공주의 자태로 장식된 안내서를 사들고 공연이 시작되는 8시까지 대충 내용을 읽어두었다. 이 날의 공연에는 투란도트 공주역에 제나 디미트로바(Ghena Dimitrova) 칼라프 왕자역에 니콜라 마르티누치(Nicola Martinucci) 시녀 류 역에는 알리다 페라리니(Alida Ferarini)였다.

제1막에서는 투란도트공주가 낸 3개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페르시아 왕자를 도끼로 목을 베어 처형하는 장면이다. 벌써 12번째 페르시아의 왕자가 목을 베이는데 북경의 시민들은 이제 그만 자비를 베풀라고 아우성이다. 타타르가 망하고 난 후 세상을 떠돌아다니던 칼라프왕자와 눈 먼 봉사가 되어 떠돌이 거지가 된 아버지 티무르 왕과 시녀 류가 참수 현장에서 만난다.

투란도트 공주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 칼라프 왕자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세 개의 수수께끼를 푸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시녀 류도 ‘왕자님 들어 보세요’ 라며 만류하지만 왕자는 ‘울지마라 류야.’라고 위로하며 내가 죽으면 아버지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수수께끼는 세개목숨은 하나’라며 핑, 팽, 퐁이라는 관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큰 징을 세 번 울려 도전 의사를 밝힌다. 크게 울리는 징소리는 너무나 강열하여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1막을 마치고 휴식시간에 음료를 사 마시기 위해 지갑을 찾았으나 지갑이 없어졌다. 돈도 돈이지만 여권도 함께 들어 있는데 낭패였다. 안주머니를 살펴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주머니 아래쪽이 터져있었다. 순간적으로 아이쿠 소매치기를 당했구나 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 왔다. 그런데 자세히 터진 안주머니를 살펴보니 예리하게 잘린 것은 아닌 듯 했다. 저녁에 날씨가 쌀쌀해져 공연장에 오기 전에 다른 사람의 점퍼를 빌려 입고 왔는데 이것이 문제였다. 지갑을 속주머니에 넣었는데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지갑을 찾아보았다. 아래쪽을 보니 좌석을 임시 구조물로 만들어 그 높이가 까마득하였다. 그런데 의자 바로 옆에 지갑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지갑은 가장자리에 걸려 있어 까마득한 아래쪽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필 터진 안주머니에 지갑을 넣다니! 아래쪽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면 지갑을 다시 찾지는 못했을 것이 아닌가.

제2막은 공주와 왕자의 대결구도이다. 공주가 낸 수수께끼를 왕자는 지혜를 총 동원하여 풀어내는 스릴 넘치는 장면이다. 오랜 옛날 이 궁전에서는 선조인 한 공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 다탄인들이 쳐들어와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주는 처참하게 유린당하였다. 투란도트공주는 그 옛날의 사건을 기억하며 이웃나라 왕자에게 자신을 미끼로 하여 수수께끼로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수수께끼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갯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갈망하는 환상이다. 이것은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이 되면 죽는다.’ 칼리프왕자는 거침없이 그것은 ‘희망’이라고 풀어낸다. ‘불꽃을 닮았으나 불꽃이 아니며 생명을 잃으면 차가워지고 정복을 꿈꾸면 타오르고 그 색은 석양처럼 붉다.’ 한참을 생각하는 칼라프에게 북경 시민들은 응원을 보낸다. 그것은‘피’라고 답하며 공주가 경악케 한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 ‘그대에게 불을 주며 그 불을 얼게 하는 얼음이다. 이것이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하면 그것은 그대를 노예로 만들고, 이것이 그대를 노예로 인정하면 그대는 왕이 된다.’ 칼라프는 머리를 싸매고 고뇌를 하기 시작한다. 시민들은 응원하며 용기를 북돋우지만 시간은 흘러간다. 공주는 목을 베일 준비를 하라며 다그친다. 드디어 칼라프는 공주를 바라보며 그것은 바로 당신, ‘투란도트’라고 대답하며 자신이 승리했다고 부르짓는다. 승리의 환호가 터지지만 공주는 부왕인 알톰에게 자신을 ‘저 남자에게 던지지 말라.’고 간절하게 호소한다. 왕은 그것은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고 다그친다. 사실 왕도 이젠 지쳤다. 단호하게 거부하는 공주가 야속하고 가련하게 느낀 왕자는 내일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아내면 기꺼이 공주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칠 것이고 알아내지 못하면 공주는 나와 결혼해야 한다고 역으로 수수께끼를 낸다.

제3막에서는 북경의 시민들이 모두 잠을 못자고 있다. 공주와 대신들을 비롯하여 시민들은 왕자의 이름을 알기 위해 혈안이다. 칼라프 왕자는 최고의 테너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처절하게 부른다. 대신들은 왕자에게 아름다운 처녀와 보물을 줄 터이니 도망치라고 유혹해보지만 왕자는 단호히 거절한다. 티무르와 시녀 류가 잡혀온다. 이들이 낮에 함께 있던 것이 목격되었다고 제보가 들어간 것이다. 늙은 티무르가 걱정된 류는 ‘저 남자의 이름을 아는 자는 나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이름을 대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이 자행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공주에게 ‘이 밤이 새기 전에 공주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한 군사의 칼을 뽑아 자신의 가슴에 깊이 찔러 자결하고 만다. 푸치니는 여기까지를 작곡하고 후두암 수술 끝에 브뤼셀에서 사망하고 말았으니 미완성의 걸작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젊은 작곡가 프란 알파노에 의하여 나머지 부분이 완성되었다. 푸치니가 죽은 지 2년이 지난 후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할 때 류가 죽는 장면에서 지휘자는 관객들을 향해 돌아서서 입을 열었다. “푸치니 선생께서 작곡한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리고는 지휘봉을 놓고 무대 뒤로 들어가 버렸다. 관객들의 감동은 엄청났고 공연은 대 성공이었다. 다음날부터 비로소 알파노가 작곡한 부분이 연주되었다.

공주는 큰 충격에 빠진다. 칼라프 왕자는 고뇌하는 공주의 손을 잡고 뜨거운 키스를 한다. 얼음공주는 사랑의 열기로 서서히 녹아내린다. 어느덧 여명이 터 오르고 있다. 왕자는 내 이름은 티무르의 왕자 칼라프라고 공주에게 말한다.

동이 트고 왕과 대신들이 좌정한 가운데 투란도트공주는 이 ‘자의 이름을 드디어 알아냈다.’ 라며 가슴 벅차게 소리친다. 이름을 말하라고 재촉하자 공주는 ‘이 자의 이름은 사랑입니다.’라고 격정적으로 노래한다. 뜻밖의 대답에 알톰 황제는 ‘너는 내 아들이다. 이제 너는 공주와 결혼하고 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축복해준다.

그날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훌륭한 성악, 발레와 오케스트라, 아름다운 의상과 무대미술이 나를 오페라에 빠져들게 한 큰 감동을 주었다. 푸치니는 이 투란도트로 이전까지 자신이 이룩했던 모든 예술적 업적을 한 단계 뛰어넘었다. 푸치니의 최후의 걸작 오페라 투란도트, 그는 후두암 걸려 죽어가면서도 끝까지 작곡을 마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제3막의 류가 자살하는 장면까지 작곡을 하고는 끝내 그의 가슴에 악보를 안고 죽고 말았다. 푸치니는 마지막까지의 스켓치를 이미 다 해 두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인 알파노가 완성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한편의 오페라는 나에게 오페라로 부터 헤어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과 마력에 빠져들게 한 동기가 되었다. 나는 이후 여행을 할 때마다 그 지역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 물론 국내에서 공연되는 오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이 오페라는 우리에게 사랑을 꿈꾸게 하며 그 꿈을 이루려는 용기를 주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누군가를 목숨 바쳐 사랑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귀한 교훈을 주는 오페라이다.

 

2009년 가을, 솔 오페라단에서 이태리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 오페라단을 초청하여 서울과 부산에서 공연이 열렸다. 딸과 함께 부산 공연을 관람하였다. 미리 인터넷에서 출연진을 확인해 보았다. 칼라프 왕자역의 니콜라 마르티누치가 왠지 아는 사람처럼 느껴져 17년 전 로마에서 관람한 오페라 안내서를 찾아보았다. 생각한대로 당시 칼라프 왕자역이 바로 그였다.

“세상에 이를 수가?”

나는 17년 전의 오페라 트란도트를 회상해 보면서 공연이 무척이나 설레고 기다려졌다. 당시 마르티누치는 50대 초반의 절정기의 목소리로 큰 감동을 주었는데 이제 그는 60대 후반의 나이여서 내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기우였다. 그는 아직도 전혀 녹슬지 않은 정말 기막힌 목소리로 단연 관객의 환호를 이끌어 내었다. 나는 그에게 최고의 환호를 보냈다. 투란도트역의 파올라 로마노(Paola Romano)는 당일 갑자기 크리스티나 피페르노(Cristina Piperno)에서 역이 바뀌어 무대에 올랐으나 앙칼진 투란도트 역을 드라마틱하게 소화해 내었다. 류 역의 김경희는 매우 서정적으로 역어내어 갈채를 받았고 대신역의 핑, 팽, 퐁(모나코, 메이지, 사리넬리)도 희극적 요소를 멋지게 살려 주었다.

이날의 공연을 감상한 관객들은 모두 오페라 투란도트의 황홀한 감동에 넋을 잃었을 것이다. 음악에다 극적인 줄거리가 있기에 사람들은 오페라에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출연자의 목소리는 물론 연기,의상과 무대설치미술의 아름다움도 오페라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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