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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트라비아타- 비하인드 스토리 2013-11-12 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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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소프라노 때문에 초연은 대실패로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는 프랑스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실존인물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소설 -삼총사-로 유명한 뒤마 페르의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작가로 명성을 떨치기 전에 마리 뒤플레시스의 살롱을 몇 번 드나들었는데 그만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반하여 남몰래 연정을 불태우게 되었다. 후일 뒤마는 이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동백꽃 여인 (La Dame aux Camelias)-이란 소설을 발표했고, 이 작품은 희곡으로도 각색되어 파리의 연극무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베르디가 이 연극을 보게 된 것은 1852년 2월 파리에서였는데, 당시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채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불안한 동거생활을 하고 있던 베르디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 두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아 이를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든든한 파트너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의 대본으로 -동백꽃 여인-에서 -라 트라비아타- (길을 벗어난 여인, 방황하는 여인이란 뜻)로 새롭게 태어난 오페라는 1853년 3월 6일 베니스의 유서깊은 극장 라 페니체 오페라 하우스에서 역사적인 첫 공연을 갖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요즘도 자주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주역을 맡은 소프라노 가수의 풍만한 몸매가 폐렴으로 죽어가는 가련한 여인 비올레타 발레리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것이 실패의 첫째 이유였다. 그녀가 육중한 몸매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무대는 자욱한 먼지로 가득했고 울어야 할 관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하니 어떻게 제대로 된 공연이 가능했겠는가. 또 하나 실패의 원인을 들라면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웠던 의상 연출이 꼽힌다. 시대배경이 1840년대였던 까닭에 출연진들 모두가 당대의 의상을 입고 나왔으나 관객들은 이를 낯설어 했다. 자유롭고 분방한 연출정신으로 충만한 요즘 오페라 무대에서야 신사복 정장에 바바리 코트 걸치는 정도는 점잖은 축에 속하고 아예 사이버 룩이니 밀리터리 룩, 스페이스 룩이니해서 파격적인 의상설정이 되려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어쨋든 당시 관객들의 머리 속에는 오페라는 역시 옛날 이야기를 그린 것이란 생각이 공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명작의 가치는 한 두 번의 실패로 흔들리지 않는 법. 문제된 소프라노를 교체하고, 시대설정을 1700년대로 옮긴 후에는 예의 베르디의 감동적인 음악이 청중들의 가슴깊은 곳을 울려 이 오페라의 명성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곧 -라 트라비아타-는 전 유럽을 열광시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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